'양궁이 평안하다'에 나오는 '량왕'은 양나라의 소왕 유무(?~기원전 144년)를 가리킨다. 서한 양(梁)나라, 한나라 문제(文帝) 한경제 유형(劉衡)의 둘째 아들 유기통(劉秦塘)과 그의 어머니는 서한(後朝) 태황후(徐后皇后)이다.
기원전 178년( 한(汉) 문제 2년)에 태왕(代王)으로 책봉되었고, 기원전 168년(한문제 12년)에 회양왕(淮陽王)에 책봉되었다. 양유의 회왕은 후사 없이 죽고, 유우는 양왕의 뒤를 이었다.
칠국의 난 당시 유무는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의 수도인 수양을 방어했다. (현 하남성 상추), 수도 장안을 수호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고, 후에 두황후의 총애와 양의 광대한 영토를 받아 한나라의 형제를 계승하려고 했으나 장안이 사망하였다. 병들어 실패하여 망당산에 장사되었다.
유무가 칭호를 받은 때부터 죽을 때까지 유무는 35년 동안 왕이 되었고, 24년 동안 양나라의 왕이 되었다.
유우가 죽은 뒤 양왕국은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왕국을 고백했다.
유우가 살아 있을 때 양원(梁庭)을 짓고 세계 각지에서 인재를 모아 결성했다.
기원전 154년(한나라 경제 3년)에 오, 초, 제, 조 등 7개국이 먼저 양의 지비를 공격했다. (지금의 허난성 용성 북서쪽) 수만 명을 죽였고, 유무는 수양(현재의 허난성 상추)을 방어했고, 안궈, 장우 등은 오나라와 초나라의 군대에 저항했다.
오와 초는 양나라의 방해를 받아 감히 양나라를 넘어 서쪽으로 진군하지 못했고, 결국 오나라와 초나라가 패한 지 3개월 만에 태위주야부(周周寶) 등과 교착상태에 빠졌다. Liang이 죽이고 포로로 잡은 Wu와 Chu 군대의 수는 황실의 수와 거의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