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샤오창(Xiaochang)은 남조(南朝) 유송(劉宋) 시대에 처음 지어졌으며 1,5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은 건국 이전에는 효자가 많이 태어나는 곳으로 '동용이 아버지를 장사지내기 위해 몸을 팔았고, 황상이 이불을 따뜻하게 하고 맹종이 대나무를 달라고 울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 원나라의 곽거경(郭居景)도 이를 『이십사효』로 편찬하였다. 남조 유송(劉宋) 시대, 송(宋) 문제(文皇)의 셋째 아들 유준(劉君)이 전년에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큰형 유소(劉少)를 제압하고 제위를 차지했다. 왕좌. 유준(劉君)이 왕위에 오른 뒤 왕위를 '소견(孝建)'으로 바꾸었다. 백성의 신임을 얻고 왕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소건 원년(454년)에 안록현과 명남현(효가 모이는 곳) 동쪽에서 효를 적극적으로 제창하고 효를 행한 자에게 상을 주었다. 아들이 많이 태어나 효의 명성이 널리 퍼져 있음) 낙산 현 남부 (현 허난 성 낙산 현)에 새로운 현을 설립하고 지역 주민들의 단순함을 칭찬하기 위해 "소창"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 이후로 샤오창현은 역사 속에 존재해 왔습니다.
2. 샤오창을 현으로 세웠을 때는 영주 장샤현의 관할에 속했다. 남조(南朝) 때 제(秦)는 진사현 이양현의 관할하에 있었다. 남조 시대에 양은 난사주 안록현의 관할하에 있었다. 북조 서위(西魏) 대동 16년(550)에 위(魏)나라에 들어가 소창을 악산현으로 바꾸고 악주를 세웠다. 북주 오성 원년(559년)에 악주와 악산현을 구하고 환웨현을 설치하여 안주 관할에 두었다. 수나라 초기에는 모든 현을 폐지하고 현을 통합하여 안주총독부의 관할하에 두었다.
3. 수나라 개황 3년(583년)에 소창현이 형주로 회복되었다. 양제가 왕위를 계승한 후 현으로 바뀌어 대예 원년(605)에 안록현에 속하게 되었다.
4. 당나라 초기에는 회남로(淮南路) 안주(安州) 중앙 총독실인 안록현(雲鸡縣)에 속했다. 오덕 4~8년(621~625)에 안주현과 환양현을 통합한 적이 있다. 개원 21년(733년)에 산남동로로 개칭되었다. 보영 2년(763)에 면주로 옮겨졌다. 원화 3년(808)에 소창현이 운몽현에 들어왔다. 선통시대(860~873)에 샤오창현은 회복되어 안주회남로 안록현의 관할에 속하게 되었다. 오대 후량(後梁) 때에는 현위군(玄魏郡)에 예속되었다. 오대 이후 후당 동광 2년(924년), 후당 장종 황제가 이국창의 명칭 금기를 피하기 위해 '소창현'을 '소간현'으로 바꾸었다. 동용과 맹종의 효심이 천하를 감동시켰다는 뜻으로 안원군에 예속되었다. 이 시점에서 470년의 역사를 이어온 샤오창현은 샤오간현으로 발전하여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