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 2 세 카티석 전투, 람세스 2 세와 헤티와의 전쟁.
람세스 (Ramesses) 가 이끄는 이집트인과 헤티족 간의 갈등은 시리아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권이다. 1285 BC 4 월 말에 파라오는 오론트 계곡을 향해 군대를 이끌고 카디아석을 정복하는데, 이 도시는 히타이트족이 시리아에 세운 중진이다. 람시스는 2 만 명의 병사와 200 대의 병거를 거느리고 있는데, 이들 병력은 아몬 (Amon), 부타 (Ptah), 라 (Ra), 세트 (Seth) 라는 네 개로 나뉜다.
이번 전쟁의 목표는 시리아 북부의 땅이고, 상대는 무와타리시 (Muwatallish) 왕이다. 그는 병사 1 만 명과 전차 3500 여 대를 보유하고 있다. 오론트 강 근처에서 파라오의 군대는 히타이트족 탈영병이라고 주장하는 베두인 두 명을 붙잡았는데, 그들은 이집트인들에게 알릴 중요한 정보가 있다고 말했다. 이 두 사람은 람세스 앞으로 끌려가 무와타리시의 부대가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파라오가 쉽게 도시를 함락시킬 수 있다고 그에게 설명했다.
람시스는 이때 이미 카드 겹돌을 주머니 속의 물건처럼 보았고, 큰 부대가 집결되기 전에 아몬지대를 혼자 이끌고 카티시 북서쪽에 있는 평원지대로 달려가 이곳에서 야영했다. 그의 경비병이 적군 선두 부대의 병사 두 명을 붙잡았을 때만 그는 자신이 이미 적의 포위망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지금은 이미 늦었다. 성 안에 숨어 있던 히타이트족이 갑자기 공격을 개시하자, 어찌할 바를 몰랐던 파라오 군대가 무너져 사방으로 달아났고, 람시스만이 호위병들을 이끌고 헤티족의 공격을 막기 위해 힘차게 싸웠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전쟁명언) 지미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두 가지 예상치 못한 일 덕분에 람시스가 전신으로 물러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히타이트족 병사들이 이집트군 진영을 공격한 후 즉시 재물을 빼앗느라 바빴지만, 승승승장구하여 적군을 추격하는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전쟁명언) 그다음은 파라오의 후속 부대가 제때에 따라잡아 람시스와 그의 병사들을 구조했다. "
전체 전세가 완전히 역전됐다. 쉽게 이길 수 있었던 히타이트족은 위험에 처해 황혼에 가까워져 양측이 휴전했다. 밤에 이집트의 다른 지대 병사들이 와서 파라오를 증원하러 왔다. 카티석 전투에서 쌍방은 피해가 막심하여 다시 싸울 힘이 없었다. 더욱이, 두 당사자 모두 아시리아의 히타이트와 이집트에 대한 위협, 그리고 양국 내부의 어려움 등 몇 가지 다른 문제가 있다. 따라서 카티석 전투는 실제로 이집트와 히타이트 사이의 헤게모니 전쟁의 기본 종말을 상징한다.
프랭크 지미노는 "실제 상황은 완전히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고 말했다. 무와타리시는 많은 중형 전차를 잃었지만 (이집트인들의 병거보다 더 많지만 조작하기가 더 어려웠음), 그의 병사들은 거의 손상되지 않았다. 그러나 람시스에게 헤티족의 기습으로 그는 적어도 한 개의 지대를 잃었다. " 전쟁의 결과는 무승부였다. 이로 인해 람세스는 카티석을 점령하려는 계획을 포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홍보를 통해 이번 앞날을 거의 망칠 뻔한 정전을 위대한 지도자의 지도 아래 영웅적인 쾌거로 변모시켰다. 람세스는 이번 전쟁을 많은 신전에 새겼다. 그는 새로운 표현 스타일을 가져왔다. 아부 신베일러 신전은 카디석 전쟁을 묘사한 돋을새김에서 이전에 줄무늬 장식을 접었던 표면이 현재는 흥미진진한 장면을 연출해 더욱 극적인 움직임을 연출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템플린, 전쟁명언) (윌리엄 셰익스피어, 오페라, 희망명언)
돋을새김에 묘사된 람세스와 전차의 이미지는 이런 새로운 스타일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으며, 사람들은 화면 디테일의' 네 팔' 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여분의 두 팔이 병거 운전자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몸은 람세스 2 세로 완전히 덮여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석각문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람시스가 부른 아몬신의 팔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가설은 그들이 람세스 본인의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엠보스를 창작한 예술가는 두 팔을 더 그리는 것은 화면의 움직임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이 위대한 파라오는 그의 인생에 관한 서사시가 이미 청사에 이름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그의 죽음에 관한 서사시도 똑같이 널리 알려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람세스의 가장 칭송받을 만한 쾌거는 히타이트족 (Hittites) 을 겨냥한 카티석 (Qadesh) 전투였다.
이 젊은 파라오의 자부심이 자신을 거의 무너뜨릴 뻔했을 때, 운명의 여신은 오히려 그를 돌보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최종 결과다. 적어도 그의 신하들에게는 이렇다.
람세스 전문 저서에 관한 프랭크 지미노 (Franco Cimmino) 는 "고대에는 어떤 전쟁도 이렇게 많은 사료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고 설명했다. 람세스 전쟁이 돌아온 후, 그의 왕궁 벽에는 아부 신벨 신전, 카르나크 신전의 루크소 신전에 전쟁을 그린 장면이 새겨져 있었다. (데이비드 아셀, Northern Exposure, Northern Exposure, Northern Exposure, Northern Exposure (미국 TV 드라마), 전쟁명언) 이 거대한 예술품들은 병사, 이집트인들이 주둔하고 싸우는 장면, 포로가 된 병사들을 각각 보여준다. 물론, 그중에서 두드러진 지위를 차지한 것은 람시스였다. 화면에서 그는 홀로 적군을 쳐부수었다. 우리에게 전해진 또 이 전쟁을 서술하는 두 편의 서사시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곡은' 판달의 노래' 로, 신전 속 벽화와 함께 이 역사를 서술했다. "